'너 그러다 외롭게 늙는다' 마음 속으로 되뇌며 정신과학적 방어망 펴
사디스트적 상사에겐 고통을 과장하는 것도 방법
최악의 경우 쿠데타 꾀할 땐 일목요연한 만행 일지 적어 상사의 상사 찾아가 따지라
위비 SOS!
#1.“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능력이야! 경쟁사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들 하는데, 당신은 왜 그게 안 돼?”
서울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김모 차장은 매일같이 이런 모욕을 당한다. 1주일에 2~3차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프로젝트나 자신과 관련 없는 계열사 일을 직원 의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키기 때문. 최근 “도저히 실현 불가능합니다”라고 상사에게 맞불을 놨더니 김씨보다 연차 낮은 직원을 불러 비밀리에 일을 시키면서 “나한테만 조용히 보고하라”고 했다. 김씨는 “15년간 직장 생활해오면서 그런 치욕은 처음 느꼈다”고 했다. 직원 성과는 자신이 ‘발로 뛰어 만든 업적’으로 포장해 상부에 보고하고, 직원들에겐 수고했단 말 한마디 없다. 대학원에 다니는 상사는 최근엔 논문 번역 같은 사적인 일까지 시키고 있어 김씨는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다.
- ▲ 나쁜 상사에게 당하고만 살 것인가? 사진은 상사가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모습을 연출한 것. / corbis
#2. 서울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50대 초반 상사의 별명은 '투척맨'이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던지고 본다는 이유에서다. 서류 더미, 볼펜, 음료수병, …. 한번은 인사가 발표됐는데, 자신이 인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자 "말도 안 돼!"라고 소리치며 책상을 엎었다. 그는 회의 안건에 대해 딱 부러지게 의사 결정을 안 하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에게 "왜 미리 일 처리를 안 하느냐"고 화를 낸다. 다른 부서 상사에 힘을 못 써 매번 불필요한 일을 떠맡으면서 부서 간 '기 싸움'에서도 밀리기 일쑤다. 최씨는 "리더가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발전이 있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어 내가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람들이 사표를 쓰는 것은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상사가 싫어서인 경우가 많다. 어느 조직에나 나쁜 상사는 있다. 나쁜 상사는 크게 마키아벨리적인 상사와 무능력한 상사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둘 다인 경우가 최악이다.
마키아벨리적 상사의 특징은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神)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심해지면 사디스트나 편집광적 인물로 변할 수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쁜 상사는 조직을 일종의 먹이사슬로 생각하는 사자"라고 표현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어 치우면서 코끼리 같은 덩치 큰 동물엔 힘을 못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반면 무능력한 상사는 업무에 열정이 없어 업무 개발을 포기하고, 업무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직원에게 일 시키는 것도 망설인다. 물론 직원을 교육하거나 훈련시키지도 않는다.
◇나쁜 상사 대처법
그렇다면 나쁜 상사에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흔한 대처법은 '똥은 더러우니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대기업 직원 최씨는 "대인적인 접촉을 피하면서 업무에 관해 최대한 빨리 피드백을 준 뒤엔 눈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 사람 참 희귀 동물이네. 인간문화재 아니냐는 식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너 백날 악질처럼 굴어봐라. 그러다 외롭게 늙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속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비위를 맞추면 그 사람이 이해됩니다. 확실한 정신과학적 방어망을 펴는 것이지요."
최철규 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사디스트적인 상사에 대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을 하는 데 엄청난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을 과장해서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부장님 말씀이 심하시네요"라고 하는 대신 "부장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소 초라하게 느껴지네요"라는 식으로 최소한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업적을 가로채는 상사를 둔 경우 은근히 자신의 업적을 주위에 알리면 좋다. 상부에 보고할 보고서를 다른 직원들에게도 참조로 해서 같이 보내거나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내 업적을 미리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같은 편을 많이 만들어 놔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상사와 일하는 건 기회라는 역발상적 시각도 있다. 나쁜 상사가 있다는 건 통상 조직의 성과가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조직일수록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돋보일 수 있다는 것. 곽금주 교수는 "'이 상사가 나 없인 일을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 관계가 뒤집어져 실질적으로 직원이 갑이 되고 상사가 을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끝까지 참아야 할까?
너무 심할 경우엔 참고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서를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표시 안 나게 하는 게 좋다.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백모(42)씨는 노동조합과 인사부서에 요청해 부서를 바꿨는데, 상사에게는 "다른 경력을 쌓고 싶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최악에는 직장을 때려치거나 '쿠데타'를 꾀해야 할 경우도 있다. 행동을 취할 때는 그 상사에 대한 나쁜 평판이 사내에 얼마나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지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사내에 다른 윗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어두는 것도 요긴하다. 김기령 타워왓슨스 대표는 "쿠데타를 꾀할 땐 동료 직원과 나쁜 상사의 만행을 나타내는 다양한 증거 자료를 확보해 그 상사 위의 상사를 찾아가 따지라"고 말했다. 증거 자료는 '얼마 전에 누가 불만을 품어 떠났다'는 단발적 사례로 접근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과거부터 누적돼 온 퇴사나 부당 대우 같은 문제점을 일목요연한 일지 형태로 정리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나 만약 그 나쁜 상사가 상부 경영진과 신뢰관계를 잘 구축해놨다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박형철 머서코리아 대표는 "대기업은 1년에 1~2차례씩 직원 설문이나 의견 조사, 성과 평가를 통해 상사의 리더십을 평가하는데, 상사의 리더십에 확실히 나쁜 점수를 줘서 조직에 맞지 않는다고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종민 교수는 "다른 직장으로 옮길 경우 새 직장의 상사가 예전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철 대표는 "상사가 일방적이지만 자꾸 기회를 주려는 것은 직원을 조직에서 육성하고 키우는 행위일 수 있다"며 "나의 업무 범위에만 한정되지 않고 업무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보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멍청한 상사와 같이 일하는 법(How to work for an idiot)'의 저자 존 후버는 "멍청한 상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따라서 어디에 몸담고 있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부터 터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