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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사회에 던지는 슈틸리케의 용인술
한국사회에 던지는 슈틸리케의 용인술
1대2 석패. 하지만 국민은 분노하지 않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한국 축구의 변화에 오히려 열광했다. ‘의리 축구’와 ‘이름값 축구’로 대변됐던 한국 축구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의 손을 거치면서 환골탈태하고 있다.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호주에 1대2로 패한 한국 축구에 팬들이 손가락질 대신 박수를 보낸 것은 슈틸리케 감독의 ‘용인술’ 덕분이다.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을 발굴하고 선수들과 호흡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모습은 개각을 앞둔 박근혜정부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박또박 한국어로 희망을 전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 2부리그서 원석 '발굴'
“국내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박주영, 이동국, 김신욱 말고는 스트라이커가 없을 것이다.” 아시안컵 개막을 앞두고 한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 스트라이커 선발에 관해 던진 한마디다. 이 말을 전해들은 슈틸리케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뒤흔든 뒤 본격 선수 발굴에 나섰다.
모든 경기장을 샅샅이 뒤진 슈틸리케 감독이 발견한 ‘원석’이 이번 대회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정협(24·상주 상무)이다. ‘도박이 아니냐’는 주위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적극 기용했고, 이정협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기존 ‘브랜드 가치’가 아닌 관찰을 통해 발견한 구성원의 ‘강점’을 중시해야 한다”며 “강점을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보여준 것이 슈틸리케 용병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상황따라 변화 추구 ‘유연성’
대회를 막론하고 결승전에서는 모든 감독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안정이 아닌 변화를 택했다. 중앙 미드필더로만 뛰었던 박주호(28·마인츠05)를 왼쪽 측면 공격수로 투입한 것.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임에도 박주호는 호주의 측면 공격을 철저히 봉쇄하는 동시에 공격에도 적극 가담하며 슈틸리케 감독 기대에 부응했다.
한번 확정되면 바꾸기 어려운 골키퍼 포지션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이후 주전 자리를 꿰차는 듯했던 김승규(25·울산 현대) 대신 과감하게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을 투입하는 등 줄기차게 변화를 시도했다. 덕분에 대표팀은 대회 도중 공격의 핵심 구자철(26·마인츠05), 이청용(27·볼턴 원더러스)이 이탈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대체 선수들의 맹활약 덕분에 준우승을 일궈냈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이번 대회 준우승은 주축 선수 부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슈틸리케 감독의 혁신이 이끌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 현장 의견 중시하는 ‘소통’
한국이 0대1로 뒤진 아시안컵 결승전 후반전 40분. 눈에 띄게 지친 이정협은 공중볼 다툼에서 위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최후방 수비수 곽태휘(34·알힐랄)가 슈틸리케 감독을 향해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정협은 지쳤으니 내가 최전방으로 올라가서 공중볼 싸움을 하겠다’는 곽태휘의 요청에 슈틸리케 감독은 즉각 반응했다. 이정협을 빼고 곽태휘를 최전방 공격수로 올린 것. 곽태휘는 적극적인 헤딩 싸움으로 공을 따내며 후반전 추가 시간 손흥민(23·바이어 레버쿠젠)의 동점골을 이끌어냈다.
최 대표는 “현장의 숱한 목소리가 묵살되는 것은 ‘보고해 봤자 깨질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며 “대표팀에 ‘수평적 문화’를 강조해 현장과 적극 소통한 슈틸리케 감독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과 호흡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시작 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슈틸리케 감독은 벤치에 앉지 않고 입장하는 선수들과 함께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 선수들을 격려한다.
◆ 주눅 안들게 힘싣는 ‘격려’
아시안컵 내내 슈틸리케 감독은 말 한마디가 지니는 힘을 잘 보여줬다.
‘슈틸리케 어록’ 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대회 도중 이정협에게 건넨 한 마디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무득점에 그친 이정협에게 슈틸리케 감독은 “넌 항상 하던 대로 편하게 부담없이 해라. 잘하든 못하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이정협은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매일경제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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