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론으로 풀어 본 文 vs 安 단일화 전략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10월 중순 정치쇄신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제안을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던졌지만 거절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경제민주화 논의를 함께 하자고도 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이후 문 후보 측은 정책 공조를 하루 빨리 시작하자며 거의 매일 안 후보 측에 각종 제안을 던지고 있다.
협상이론에서 문 후보 측의 행동은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업사원이 즐겨 사용하는 이 방법은 처음에는 작은 요청이나 합의로 시작해 점점 요구 수준을 올려가는 협상 기법이다.
협상전문가들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이미 막이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양쪽 모두 본격적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종 협상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단일화, ‘BATNA’ 약한 문 후보가 더 절실
왜 문 후보는 끊임없이 안 후보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 할까.
협상이론에서는 결렬될 경우의 차선책, 즉 ‘BATNA’에 따라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BATNA가 좋거나 견딜 만할 경우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협상의 절실함이 덜하다.
단일화 협상의 BATNA는 협상이 결렬되고 3자 대결로 가는 것이다. 문 후보의 경우 협상이 결렬되고 3자 대결로 치러지는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당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반면 안 후보는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까지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보다 높기 때문에 3자 대결 시 승산도 안 후보가 다소 높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31일 “문 후보가 제안하는 단일화, 연대, 연합은 결국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단일화와 같은 의미”라며 “문 후보 측이 단일화에 더 절실하고 급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가 사용하는 협상 기법은 또 있다. 문 후보 측은 최근 후보등록일(11월 25, 26일) 일주일 전까지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번 주 안에 실무협상 테이블이 꾸려져야 한다는 일정을 제안했다. 또 ‘단일화 4원칙’을 제시하며 협상의 틀을 내놨다. 이런 행동은 상대보다 먼저 내놓은 제안이 협상의 기준이 되는 ‘앵커링(닻 내리기)’ 효과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있다.
다만 최근 문 후보 측이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후보의 입당처럼 예민한 사안을 단일화 원칙 중 하나로 넣은 것은 상대의 거부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이슈부터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서두르다 보니 처음부터 지나치게 무거운 이슈를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제안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는 민주당 쇄신이 먼저’라는 모호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상대방에게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나중에 조금씩 깎아주면서 협상에 임하는 ‘에임 하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 안철수, 최후통첩으로 속전속결 단일화 노려
그럼 앞으로 단일화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까.
전문가들은 데드라인(마감시한)에 대한 각 후보의 태도에 주목한다. 마감시한이 임박한 쪽이 협상에서 불리하다는 것은 협상이론의 상식이다. 문 후보가 마감시한을 후보등록일로 정한 것에 대해 안 후보가 ‘넘겨도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협상에서 안 후보가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문 후보는 경선을 거쳐 선출된 정당의 후보인 만큼 양보할 경우 타격이 엄청나지만 안 후보는 그렇지 않다”며 “상대적으로 잃을 게 적은 안 후보로선 마감시한을 후보등록일 이후로 잡더라도 괜찮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 측은 내부적으로 설정한 마감시한에 임박한 시점에 원하는 단일화 방안을 ‘최후통첩’ 방식으로 던질 가능성도 있다. 최후통첩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협상이 결렬되는 극단적인 협상 방식이다.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안 후보는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한꺼번에 모든 카드를 공개하면서 속전속결로 단일화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며 “문 후보는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만큼 안 후보가 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운 국민의 뜻을 내세워 하루빨리 안 후보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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