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5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 전화를 걸어 이학수 비서실 차장(전 경영전략실장)에게 사장들과 임원들을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라고 지시했다. 6월 7일 영문도 모른 채 독일에 모인 사장 및 임원들을 향해 이 전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불량률 등을 질타하며 ‘삼성신경영’을 선언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이건희 전 회장의 명언이 나왔다. 이후 삼성은 뼈를 깎는 경영혁신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체질을 갖췄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위기 때마다 난관을 정면 돌파하는 경영전략을 펼쳤다.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반도체업계가 감산에 들어 갔을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려 결국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처럼 위기를 맞을 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역할은 중요하다.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비전 확보와 리더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은 방향성, 즉 구성원들에게 불빛과도 같다”고 말했다.
■CEO 리더십이 기업 성패 결정
서두칠 전 한국전기초자 대표.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 부채비율이 1114%가 넘어 퇴출 0순위로 거론되던 부실 기업인 ‘한국전기초자’ 경영을 맡아 3년 만에 영업 이익률 세계 1위의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서 대표는 세계적인 구조조정 전문가로 2004년 미국 타임지 선정 ‘25명의 영향력 있는 글로벌 경영인’에 오르는 등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 CEO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서두칠 사장은 회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 직접 헌신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해 직원들이 조직의 목표에 한방향으로 뭉쳐 효과적인 에너지를 발휘해 도약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매출 1000억원 이상 375개사(2000년 기준) 가운데 불황기를 거치면서 상위 25% 기업 가운데 32.6%(31개사)만이 고성과를 나타냈다. 나머지 67.4%(64개사)는 그렇지 못했다.
고성과군이 받았던 불황의 충격강도는 저성과군과 비교해 볼 때 비슷하거나 오히려 컸지만 결과는 이처럼 차이가 났다. 이 같은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CEO의 역량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CEO가 자신감을 보여야
일본의 대표적 섬유회사인 도레이사의 마에다 사장. 마에다 사장은 1993년 봄 섬유업계 대불황으로 경쟁사 모두 협조 감산을 유도할 때 오히려 증산 정책을 시도하여 결국 일본 섬유업계 1위를 탈환했다. 마에다 사장은 “불황 뒤에는 반드시 호황이 온다. 흔히들 불황이 오면 모두가 감산하고 결국 자리를 내주게 된다. 누가 뭐래도 감산을 하지 않겠다”며 뚝심 있게 밀어붙여 성공을 거두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2001년 9·11테러로 큰 위기를 맞았다. 이때 케너스 체놀 회장은 메디슨스퀘어 가든으로 전직원을 소집,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더 강하고 훌륭한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5년 후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포천지는 이 회사를 미국 최고의 리더십 회사로 선정했다.
관료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비대한 공룡 제너럴일렉트릭(GE)을 변모시켜 기업가치를 120억달러에서 4500억달러로 끌어올린 GE의 전 회장 잭 웰치.
경영혁신 대명사인 그는 4E를 주장했다. 4E란 비범한 리더들에게 공유되는 네 가지 특징(Energy, Energize, Edge, Executes)을 갖추고 있는 CEO다. 잭 웰치의 4E에는 분명한 전제 조건들이 있다. 도덕성, 인품, 직업 윤리와 같은 자질들은 리더십의 기본이다.
최철규 부원장은 “도덕성이 부족한 매니저라도 강력한 에너지를 소유할 수 있지만 그는 십중팔구 동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거나 그들을 지도할 수 있는 도덕적 나침반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위기때 빛나는 한국형 리더십 조건
외환위기때 웅진그룹은 나날이 쌓이는 재고 정수기 때문에 애를 먹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정수기 렌털 사업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이처럼 현재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리더십의 조건으로 한국리더십센터 정병창 부사장은 “위기때 일수록 신뢰받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면서 “신뢰받는 리더란 ‘성품과 역량’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남 보스턴컨설팅 서울사무소 대표는“위기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직원들은 동요를 일으킨다”면서 “리더가 직접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신감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최근 같은 위기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한국형리더십 조건은 헌신하는 CEO”라고 정의한다. 그는 “CEO는 통찰력을 갖고 헌신과 협력의 조직문화를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불황기라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미래를 조망하는 통찰력은 CEO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CEO는 불황일수록 여러 전문가를 만나 세상의 흐름을 읽고, 위기 극복의 큰 그림을 그리는 위대한 설계자(Grand Design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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