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00억달러'란 문구는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개발 목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 하나의 상징어였다. 정부와 기업, 산업현장의 근로자 모두가 '100억달러'를 향해 달렸고 목표 시한보다 2년 앞당긴 1977년 이를 달성했다.
숫자의 특징은 구체적이며 명확하다는 점이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목표와 지향점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비전형 리더들이 숫자를 많이 활용한다"고 말한다.
GE의 전 회장 잭 웰치는 비전에 대해 말할 때도 "CEO는 기업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최소한 700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며 숫자를 강조했다.
후계자인 제프리 이멜트 회장도 "GE를 이끌다 보면 1년에 7~12번 정도 '시키는 대로 해'라고 얘기해야 할 때가 있다. 1년에 18번이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 좋은 사람들이 떠날 테지만, 3번만 말하면 회사가 무너진다"며 리더의 고민과 역할을 숫자로 설명했다.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도 경영 비전과 조직 문화, 업무 방식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숫자를 자주 활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김쌍수 한전 사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등이 꼽힌다.
◆정준양 회장의 숫자 리더십
정준양 회장은 회장 취임 후 포스코의 미래상으로 '포스코 3.0'을 제시했다. 창업기가 '포스코 1.0', 성장기가 '포스코 2.0'이었다면 이제는 '포스코 3.0'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최근 고위간부 운영회의에서도 '숫자 리더십'이 드러났다.
"최고경영자에 건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의 비율은 5%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고, 나머지 95%는 부문 내부나 부문 간의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선행 관리, 진행 관리, 결과 관리의 비율이 '40 대 30 대 30'이 되도록 업무를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를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모든 보고서는 1쪽, '3 Step'과 '3S' 원칙으로 작성하라"고 숫자를 제시하며 지시했다. 보고서 첫 부분에는 보고의 목적과 결론을, 두 번째는 결론의 근거, 세 번째는 실행계획을 담되, 표현을 짧고(short) 이해하기 쉽고(simple) 명확하게(specific) 하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경영목표 설정과 관련, "목표는 무조건 30% 높게 잡아야 한다. 그런 뒤 95%를 달성하면 1등 평가를 주겠다"고 했다.
◆김쌍수 한전 사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숫자 강조
김쌍수 한전 사장도 숫자를 제시하며 경영 혁신을 강조한다. 그가 LG전자 CEO 시절부터 강조해온 경영혁신 10계명 중에는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는 것이 있다. 5% 개선은 기존 방식의 틀 속에서 개선 여지를 찾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30% 개선은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꾸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므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조직 혁신은 4단계로 추진된다"고 말한다. '모방·추월·혁신·창조'의 순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한전 핵심 인력과의 간담회에선 "모든 것에 대해 Why(왜)를 3번 던져보라"고 주문했다.
윤석금 웅진 회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1주일만 더' 정신으로 설명한다. 어렵다고 생각될 때 마지막으로 "1주일만 더 한다"는 정신이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는 "101%를 만들어야 창조"라는 말도 자주 한다. 99%를 해내는 것은 모방이지만 101%를 만드는 것은 창조라는 것이다.
◆숫자는 명확한 방향 제시, 창의성은 제약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은 "조직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숫자는 명확하므로 조직이 한 방향으로 매진하는 길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기업 경영에서 '숫자 리더십'의 약점도 지적된다.
서울대 공공리더십센터 김광웅 교수는 "희랍의 금언 중에 '셈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은 그게 아니다'는 말이 있다"며 "숫자를 강조하면 정작 중요한 실체는 없어지고 지수화된 숫자만 남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영업 부문처럼 실적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숫자가 중요하지만 창의성이나 개인 역량의 극대화가 필요한 부문에서 숫자를 강조하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 숫자에만 맞추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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